왜 역사 속 모든 뇌 은유는 틀렸는가

왜 역사 속 모든 뇌 은유는 틀렸는가

과학적 단순화의 필요성과 위험성

과학은 복잡한 현실을 인간 인지에 이해 가능하도록 단순화해야 한다. 인간의 작업 기억과 주의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패턴을 식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세부 사항을 생략한 모델을 만든다. 그러나 이 과정에 대해 두 가지 철학적 관점 사이에 중요한 긴장이 존재한다:

  • Simplicius: 우주는 근본적으로 단순하며, 우아한 방정식을 찾는 것이 근본적인 진리를 발견한 것이라는 믿음.
  • Ignorantio: 단순화는 인간의 한계에서 비롯된 필수적인 필요이며, 모델은 실제 진리가 아니라 유용한 허구 혹은 근사치(지도는 실제가 아니다)라는 믿음.

The Brain Abstracted의 저자이자 마즈비타 치리무우타 교수는 "Ignorantio" 입장을 옹호하며, 성공적인 과학은 우리가 유용한 단순화를 만드는 데 능숙함을 증명할 뿐, 자연 자체가 단순하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배운 무지"라고 표현되며, 알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이해하기 위해 주제를 연구하는 것이다.

뇌 은유의 진화

역사 전반에 걸쳐 뇌에 대한 지배적인 모델은 그 시대의 가장 정교한 기술을 지속적으로 반영해 왔다. 이 패턴은 이러한 모델이 문자적 설명이라기보다 비유임을 시사한다:

  • 수압 자동장치: 데카르트는 신경계를 관을 통해 흐르는 액체가 레버를 밀어내는 것으로 보았다.
  • 전신망: 전기 신호가 발견되면서 뇌는 전선 네트워크로 모델링되었다.
  • 전화 교환국: 뇌는 운영자가 신호를 라우팅하는 시스템으로 여겨졌다.
  • 컴퓨터: 현재 지배적인 은유는 마음을 생물학적 하드웨어 위에서 실행되는 소프트웨어로 본다.

이 전환은 "잘못된 구체화의 오류"를 보여준다. 유용한 은유가 현실로 인식되는 것이다. 맥컬러크와 핏츠와 같은 초기 사이버네틱 학자들은 논리 게이트를 뉴런의 기능적 설명으로 사용했지만, 현대 담론에서는 뇌가 실제로 컴퓨터라고 주장하며, 설명의 우아함을 현실의 구조로 착각한다.

소프트웨어, 영혼, 그리고 인과 불변성

요샤 바흐는 소프트웨어가 문자 그대로 "영혼"이며 은유가 아니라는 도발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특정 패턴이 "인과 불변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즉, 물리적 기질(실리콘, 뉴런, 혹은 종이 화폐)과 무관하게 인과력을 가진다. 이런 관점에서 소프트웨어는 그 기질을 제어하는 추상 메커니즘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기질 간 "동일성"이 인간이 부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돈의 인과력은 종이나 디지털 원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합의라는 사회적 기질에 존재한다. 따라서 불변성은 자연의 내재적 속성이 아니라 인간의 해석적 관행의 결과이다.

예측 vs. 이해

시스템을 예측하거나 제어하는 능력과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 사이에는 근본적인 구분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 존 점퍼는 이 세 가지 범주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1. Predict: 미래의 값이나 상태를 예측한다.
  2. Control: 특정 미래 값을 달성하도록 시스템을 조작한다.
  3. Understand: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설명하는 전달 가능한 사실들의 압축된 집합을 보유한다.

AI 모델(예: LLM)은 예측과 제어에서는 뛰어나지만, 이해 행위는 수행하지 않는다. 노엄 촘스키는 "모든 것을 예측하는 이론(예: '아무거나 가능')은 왜 어떤 것이 특정 방식이고 다른 방식이 아닌지를 설명하지 못하므로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예측만 가능한 블랙 박스에만 의존하면 도구가 고장 났을 때 근본적인 이해가 없기 때문에 실패를 예측할 수 없다는 위험이 있다.

AGI 필연성의 환상

인공지능 일반 지능(AGI)의 필연성에 대한 광범위한 믿음은 "문화적 역사적 환상"일 수 있다. 이 관점은 그 믿음이 과학적 확신이 아니라 삶과 마음에 대한 기계론적 관점의 오랜 역사의 부산물이라고 본다. 만약 마음이 단순히 메커니즘이라는 가설이 틀렸다면, 생물학적 AI의 필연성은 근거가 없어진다.

지식은 구현되고 관점적이다

지식은 보편적이고 관점이 없는 저장소(예: 인터넷이나 LLM이 제공하는 "신의 눈")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며, 구현되고, 관점적이다.

촉각적 실재감

치리무우타 교수는 "촉각적 실재감"을 제안한다. 과학적 지식은 시각보다 촉각에 더 가깝다고 본다. 연구자는 거리를 두고 현실을 관찰하기보다 시스템을 "찌르고 휘저어" 탐구 과정 자체가 찾은 패턴을 부분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인지적 지평선

노엄 촘스키는 유기체가 "인지적 지평선"—그들의 능력에 내재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쥐가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제공받아도 소수(prime numbers)를 이해하도록 훈련될 수 없는 것처럼, 인간도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벽을 인식하는 것이 과학적 진보의 중요한 부분이다.


요약: 이 영상은 수압 펌프에서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단순화와 은유가 어떻게 현실로 굳어지는지를 탐구하며, 이해는 이러한 모델의 한계를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제목: 왜 역사 속 모든 뇌 은유는 틀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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